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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 조인성 - 갈등과 갈망이 나를 움직인다 | 2006.06.14
 



할리우드의 쟁쟁한 블록버스터들을 상대로 조인성이 냉혹한 극장가의 포문 앞에 섰다. 그가 3년 만에 장전을 준비하고 나선 작품은 유하 감독의 신작 <비열한 거리>. “아직 연기인생의 10타수 3안타밖에 치지 못했다”라고 호쾌하게 말하는 이 젊은 친구는 이제 막 ‘스타’에서 ‘배우’라는 이름 앞의 호칭에 떳떳하기 시작한 뜨거운 청춘이다.

배우마다 그 횟수와 시기적 순환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냥 척 봐도 매혹적인 배우의 얼굴에 갑자기 후광까지 생기며 한층 그들이 더 아름다워지는 시기가 있다. 개봉을 앞둔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에게는 요즘 유독 그런 오라가 감지된다. 그런 갑작스러운 ‘미의 포스’는 과연 어디에서 근원하는 것일까. 개인적 체험의 눈으로 비추어 봤을 때, 배우가 유독 아름다워지는 시기는 그 혹은 그녀가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작품 속의 캐릭터를 만나 성공적으로 조우했을 때다. 그들의 몸에 착 달라붙는, 제대로 된 ‘캐릭터의 맞춤 수트’를 걸친 배우들에게는 다른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영묘한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연기하는 병두는 욕망과 성공을 좇다가 비루하게 용도 폐기 처분된 삼류 조폭이다. “같은 입으로 먹고 살아가는” 식구들에 대한 책임과 그 책임 의식에서 발현된 욕망 때문에 비극적 몰락을 겪게 된 이 슬픈 청춘의 눈에는 치열한 열정과 갈망이 있다. 그건 어떻게 보면, TV와 영화에서 전혀 다른 연기적 평가를 얻었던 배우 조인성의 좌절과 연기적 갈망이 비로소 스크린 위에 체화된 것이기도 하다. 그간 그가 켜켜이 쌓아놓았던 연기에 대한 갈증은 조인성을 세상에 더없는, ‘비열한 거리’ 속에 선 병두로 만들었다. TV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봄날>의 유약한 그 남자는 이제 이 거리에 없다. 또 다시 멋진 맞춤 수트의 완성을 기다리며 새로운 변신과 도약을 기대하는 배우 조인성이 있을 뿐이다.

6개월 동안 100회차 촬영의 95회차 출연의 영화를 마쳤다. 이것저것 가늠해 보면 이 영화에만 당신 청춘의 근 1년을 투자한 셈이다. 첫 단독 주연작의 개봉을 앞둔, 지금의 심정은 어떠한가?
지금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다. 드라마 <봄날> 촬영을 마치자마자, <비열한 거리> 출연을 확정했고, 그리고 영화 들어가기 3개월 전부터 액션 연기 때문에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 촬영만 6개월 했고, 끝나고 나서는 1개월 동안 밀린 CF 찍고, 다시 그 뒤 1개월간은 후시 작업을 했다. 또 지금은 홍보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 따져보니 근 1년을 쉬지 않고 일한 셈이다. 그렇게 1년을 늘상 쉬지 않고 지내다 보니까, 며칠 전에 딱 하루 쉬는 날이 생겼는데, 대체 뭘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더라. 대낮부터 술을 마실 수도 없고, 혼자서 청승맞게 오락을 하기도 좀 그렇고. 친구들을 부르자니 요새 애들 취업준비로 바쁜데 불러내기도 뭐하고.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해볼 예정이다.

그간 멜로드라마 속의 슬프고 연민 가득한 남자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멜로와 액션, 드라마가 결합된 <비열한 거리>의 병두를 연기하면서는 배우로서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 스펙트럼의 자장이 한층 넓어졌을 것 같다.
배우가 해볼 수 있는 걸 영화 한 편을 하면서 다 해본 것 같다. <비열한 거리>의 병두는 내 나이 또래의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탐을 낼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다. 지금 아니면,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캐릭터가 내겐 무척 간절했다.

실은 실제 나이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캐릭터를 연기한 셈인데, 실제 나이가 극중의 병두처럼 29살이면, 지금 연기해낸 것보다 훨씬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물론이다. 그래서 때로는 빨리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연기는 정말 경험치에 근거한 결과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빨리 그 나이의 남자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걸 해내야만 앞으로도 내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내 나이에 들어오는 작품의 장르는 대개 로맨틱 코미디류 일색이다. 그나마 나는 조금 운이 좋아서 <발리에서 생긴 일>과 같은 독특하고 독한 멜로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거다. 빨리 내 나이에서 오는 배역이 주는 한계의 틀을 깨고 싶어서 이 캐릭터에 더 집착하듯이 도전하게 된 것 같다.

언론 시사를 마치고 모두들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조인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작품 같다고 난리들이다. 어쩌면 <비열한 거리>는 당신의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제공해 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터닝 포인트라니, 과찬이다. 나는 아직 한참 더 직진해야 하는 상황인데.(웃음) 그래도 확신할 수 있는 건, <비열한 거리>가 지금 이 시점의 나에게 더없는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이 작품에 내 모든 것을 ‘올인’할 수 있었다.

유하 감독이 병두로 당신을 선택하기까지 이런저런 감정이 복합적으로 오고갔다고 하더라. 유하 감독과의 첫 대면 자리에서 당신이 감독으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을지 궁금하다.
처음 감독님 만나서 맥주 한 잔씩 하는데, 대뜸 “너 정말 잘생겼구나. 너 제대로 만들면 괜찮은 청춘스타가 되겠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그러면서 시나리오 한 번 읽어보라고 건네주셨다.

결과적으로 지금, 당신 연기에 대한 좋은 평가들 일색이어서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이야기 들어보니 유하 감독은 당신을 캐스팅해놓고는 걱정이 되어서 며칠 밤잠을 설쳤다고 하던데. 유하 감독과의 지난한 애증의 관계가 궁금하다.
그 사실 알고 있다.(웃음) 감독님은 촬영하시면서 항상 재촬영의 여지를 남기신다. 오케이가 난 촬영도 그 다음날 재촬영하게 되는 신도 꽤 있었다. 사실 배우는 재촬영을 하게 되면, 맥이 너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촬영을 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연기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당시에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지금 네가 나를 미워하고 원망해도,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네가 다 가지고 가게 되는 영화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촬영하고 난 후, 촬영 막바지 후반부에 양수리 세트장에서 감독님께서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고맙다 인성아, 정말 잘 따라와 줬다”고 말이다.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이 영화의 액션에 대역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완전히 놀랐다. 대체 그 지옥 같은 액션 신은 어떤 정신으로 찍은 건가?
아마 우리 영화 속에서 액션 연기하면서 제정신이었던 사람 거의 없었을 거다. 죽기 살기로 찍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그렇게 절실하게 연기했다. <비열한 거리>의 액션은 화려한 활극 스타일의 액션이기보다는 싸우는 사람의 이전투구하는, 치열한 감정이 섞인 액션이기 때문에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액션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직접 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극중 병두를 연기한다는 사실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질 못하겠더라.

집단 터널 난투극 촬영할 때는 종아리가 심하게 부어오르는 부상도 인식하지 못하고 촬영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정말 찍는 동안에는 아픈 줄도 모르고 찍었다. 그런데 나중에 한참 지나고 식사할 때서야 종아리가 아프길래 올려봤더니, 심각할 정도로 퉁퉁 부었더라. 그런데 순간 드는 생각이 내가 이 부상 때문에 촬영을 쉬고 중단하면, 제작비적으로도 손실이 크고 스태프들에게도 엄청나게 미안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더라. 그래서 참고 가려고 했는데, 그 사실을 안 감독님이 잘못하다가 더 나쁜 상황이 생기기 전에 부상을 치료해야 한다고 해서 보름가량 쉬고서 다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한 영화의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겠다.
정말 그랬다. 그리고 배우로서 가져야 할 덕목, 스태프들과의 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촬영하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기라는 것이 나만 혼자 튀고 가는 게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 상대방 배우와의 연기 앙상블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했다.

극중의 병두는 바로 그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접고, 불나방처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달려들게 된다. 당신도 영화 속 병두처럼 그렇게 인생에 묵직하게 책임의식을 느끼는 무언가가 있는가?
나도 병두와 마찬가지다. 피를 나눈 진짜 우리 식구, 그리고 7년째 나와 계속 함께했던 소속사 식구들 및 스태프들에게 나 역시 그런 책임의식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영화 속 병두와 비슷한 책임의식을 느끼는 당신한테 캐릭터로의 감정이입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실은 그런 병두의 책임의식을 나도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에 캐릭터에의 감정이입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대신 조폭이라는 직업적 설정에 있어서 그 뉘앙스를 쫓아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칭찬하는 조인성의 연기를 떠올리면, 감정이 폭발하다 못해 연민이 드는, 특유의 표정 연기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드라마에서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연민이 드는 당신만의 표정 연기는 없는가?
내가 인상이 좀 센 편이어서 감독님께서는 사실 무표정으로 연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주문을 했다. 처음부터 센 표정으로 가면, 극 중반 정도 즈음에는 쉽게 질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캐릭터의 입체성도 끝에서는 많이 떨어져 보이고 말이다. 그런데 무표정으로 연기하다 보니까 촬영하는 동안에는 마치 연기를 안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실은 좀 불안했었다. 감독님의 말씀을 나중에 들어 보니 그런 내 표정이 나중에 편집할 때 보니까 영화 자체에 큰 힘을 준 것 같다고 하더라.
이번 영화를 통해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평이 있다면?
알다시피 그동안 드라마를 했을 때와 영화를 했을 때의 평가가 극단을 달렸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영화에서도 배우로서의 연기 부분을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나로서는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특정 매체에서만 연기를 발로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건 어떻게 보면, 당신이 TV 드라마의 작품들은 잘 골랐으나, 영화 쪽에서는 그렇지 못한 작품들을 골랐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에는 작품 고르는 배우로서의 작품 선별안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봐주면 오히려 다행이다. 적어도 그건 내 연기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게 아닌 소수의 사람들은 마치 “네가 언제 연기를 했느냐”는 식의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런 말들 때문에 그간 많이 힘든 시간도 보내왔다. 영화를 통해서 내가 한 연기는 마치 연기가 아닌 것처럼 처절하게 무시당하기도 했다. 그런 평가를 내렸던 사람들이 <비열한 거리>를 보고 배우 조인성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릴지 무척 떨리고 기대되고, 궁금해지기도 하다.

작품 선택의 결정에 당신의 의지가 많이 개입되지 못하는 편인가?
소속사의 입장 때문에 출연하게 된 작품도 있었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다 내가 하겠다고 나섰던 작품이다. 작품 선택에 대한 책임 회피는 하고 싶지 않다. 결과적으로 다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좋은 추억이 되는 작품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리에서 생긴 일>의 재민이 같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고, <비열한 거리>의 병두 같은 캐릭터도 만날 수 있었다고 본다. 또 그러한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갈망의 힘이 지금의 나를 있게한 원동력이다.


[NETIZEN Q&A]
>> 영화 속의 병두처럼 실제 조폭이었다면, 어느 위치까지 올라가 있었을 것 같은가? 누군가 한 명을 보내고(제거하고) 교도소에 있을 것 같다. 그래야 극중 병두처럼 한 자리 보직을 차지했을 테니까.>> 문신하면서 아프거나 그 고가의 문신을 지울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가? 직접 새기는 문신이 아니고 그리는 문신인데도 네임펜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내성이 없는 피부를 꾹꾹 누르다 보니 문신 받는 내내 참느라 아팠다. 그리고 다 그리고 난 후에는 문신이 지워질까봐 씻지도 못해서 문신 지울 때는 솔직히 너무 후련하고 기분 좋았다.>> 잘생겼다는 소리가 이젠 지겹지 않은가? 잘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들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기분 좋다.>> 영화 속에서처럼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어떨 것 같은가? 정확히 첫사랑의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고, 첫 여자친구가 생긴 건 중학생 때여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잊어지지 않는 사람은 고등학교 다닐 때 2년 반 동안 만났던 사람이다. 이런 모호한 기준 때문에 남자들이 갖는 첫사랑의 판타지가 내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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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
개봉일 : 06/06/15
감독 : 유하
주연 : 조인성, 진구, 남..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