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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생 40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교섭> 임순례 감독 | 2023.02.01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1984년 대학 4학년 시절, 임순례 감독은 치악산 아래 민박집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진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조차 생소한 시기였다. 이후 감독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보자>, <리틀 포레스트> 등 굵직한 서사의 드라마를 선보이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황정민과 현빈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와 함께한 영화 <교섭>으로 여성 감독 최초로 소위 대작의 메가폰을 잡았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부터 영화산업성평등센터 ‘든든’까지 필요한 순간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지 않는 감독. 남성서사 혹은 여성서사인지는 주제와 소재에 따라 달라질 뿐 특별히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익히 알려진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모티브로 외교관 ‘정재호’(황정민)와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이라는 허구의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인물의 시작은.

당시만 해도 외교부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함께 편성해 관할하는 등 현지 사정에 어두운 실정이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은 중동이 아닌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인데 해당 국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교섭에 나서느라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의 교섭관이라면, 그리고 함께 일할 국정원 파트너가 너무 다른 스타일이라면 어떨까. 국민의 생명을 구한다는 본질적인 목적의식을 공유한 상반된 두 캐릭터가 갈등하다 합치에 이른다는 큰 서사의 줄기를 가지고 가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에 두 캐릭터가 탄생했다.



당시 국민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았던 데다 이외에도 종교와 정치, 사회적으로 얽힌 다루기 민감한 소재인데, 연출하기까지 망설임은 없었나. 어느 면에 끌렸는지.

많이 고민했다. 성격상 예산이 클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아주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풀어낼 소재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도 아닌 터라…(웃음) 그런데도 결정한 건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과 내용을 말할 수 있는 소재라서였다. 소재의 위험성도 있지만, 그만큼 특이성과 신선함이 있고 어떤 큰 이야기를 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극에서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탈레반이든 기독교 선교단이든 근본적으로 같은 양태라는 걸 품을 수 있고, 여기에 국가의 기능과 역할, 국가와 국민의 관계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국가기관(공무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영화는 중립적인 시선을 견지하는데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새다.

<교섭>은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질문을 한다. 해외에서 국민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국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어느 일방의 잘못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감독의 사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연출기법이자 방식이지만, 개인적으로 내 생각을 두드러지게 이야기하기보다 양쪽의 의견을 제시하는 걸 선호한다. 관객에게 판단을 맡기는 편이다. 따라서 극 중 인물의 대사나 특정 상황에 내 생각이 특별히 반영되지는 않았다.



사막의 이국적인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던데, 요르단에서 촬영했다고.

말했듯이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후반부 협상하러 가는 시퀀스에서의 사막, 두 주인공이 서있는 계곡 등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광 아닌가. 이런 부분이 영화 속에서 잘 표현된 것 같고 특히 사막은 정말 압도적이라 만족한다. 아쉬운 점은 초반부 자살폭탄 테러 장면이다. 카메라 앵글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어려웠고, 도로를 모두 통제한 상황에서 진행한 터라 테이크를 여러 번 갈 수 없었다. 그래도 3일에 걸쳐 나름대로 디테일하게 공들여 세팅했다. 요르단이 사용하는 아랍어와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토어는 글자가 달라서 카메라에 잡히는 간판 등은 가능한 교체하고, 교체하기 힘든 부분은 나중에 CG 작업을 거쳐 보완했다.



이렇게 장기 해외 올로케이션은 처음 아닌가. 해보니 어떻든가. (웃음)

해외 촬영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때 아테네에서 3일간 진행한 경험이 전부였다. 본격적인 해외 로케이션은 이번은 처음인데 그래도 사전 준비를 꼼꼼하게 한 덕분에 예상보다 수월했다. 세 번이나 걸쳐 사전 방문했고, 요르단은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찍는 곳이라 현지 프로덕션 수준이 높았다. 한국 스탭과 현지 스탭이 각각 100여 명 정도로 거의 반반이었는데, 그곳의 문화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가서 그런지 팀웍이 좋았다. 그 친구들도 할리우드 스탭보다 우리와 일하면서 더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하더라. 한국 사람이 정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웃음) 문제는 더위였다. 사막은 정말 덥더라.



사전 조사 등 준비 작업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은 국토가 상당히 넓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쪽은 페르시아어 방언인 다리어를, 동쪽은 파슈토어를 사용하는데 너무 달라 소통이 안 될 지경이라고 한다. 언어는 공부할 엄두도 못 냈고, 탈레반이라는 집단의 탄생 배경을 비롯해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 관해 사전 조사를 중점적으로 했다. 요르단은 아랍민족은 아니라도 같은 무슬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문화적 유사성이 있고, 아프가니스탄 문화와 관련한 자문 그룹이 있어서 그들과 의논해 환영 의식과 이때 춘 춤의 안무를 짜기도 했다.



기억나는 비하인드가 있다면.

음… 현지 배우들이 약간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특징이 있더라. 예를 들면, 노새 타는 장면에서 캐스팅 전에는 분명히 말을 잘 탄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면 말을 처음 타본다든지 하는 식이다. 운전을 진짜 잘한다고 자신했던 배우도 잘 못하는 등 금방 탄로날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 부분이 있더라. 지금 생각하면 소소한 에피소드지만, 당시는 참 황당했던 기억이다.



현빈 배우와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옆에서 지켜본 그는.

캐릭터 구축이나 연기하는 데 있어 엄청나게 꼼꼼한 배우더라.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아주 세세히 확인하고 체크하는 성격이다. 사실 예상보다 수월했다지만, 해외 촬영 환경이 녹록하지만은 않고 이 과정에서 배우로서 힘들고 화나는 부분도 있을 텐데 언제나 평상심을 유지하더라. ‘이 사람은 왜 화도 안 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까탈스럽거나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면이 없었다. ‘도대체 언제 화가 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늘 역지사지로 생각한다고 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고 생각하면 화가 안 난다고! 현장 매너나 작품을 대하는 자세 모든 면에서 부침이 없는 시종 여유로운 배우라는 생각이다.



황정민 배우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를 통해 영화의 길을 열어준 당신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하며, 각본을 읽지도 않고 무조건 오케이했다고 밝혔다. 오랜만에 그를 호출한 까닭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측면이 작용했겠지만, 각본도 안 보고 결정했다는 말은 사실 시사회 때 처음 들었고, (웃음) 배우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캐스팅 이유는 일단 흥행 배우이고, 탈레반과의 협상을 액션이 아닌 드라마로 풀어가려면 마지막 30분간 협상 테이블의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의 중심을 잡고 힘 있게 관객을 견인할 수 있는 배우로 그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다행히 흔쾌히 OK했고, 역시나 ‘재호’를 잘 연기해줬다. 마치 설날에 봤던 어린 조카를 20년이 흘러 서울대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재회한 느낌이더라.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만 해도 영화 초보라 현장에서 마냥 신나 하고 재미있어 했다면, 이제는 주연배우로서 가진 책임감과 집중력, 그리고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영화적인 지능이라고 할지, 영화적인 사고력이 매우 발달해 있다는 걸 느꼈다. 지난 20년간 이러한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주연배우로서 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겠더라.



언급한 후반부에 전개되는 탈레반과 재호의 교섭 장면은 극의 하이라이트다. 연출 시 주안점은.

이 동굴 협상 시퀀스에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재호는 계속 앉아 있는 입장이라 제일 큰 액션이라고 해봐야 전화기를 뺏는 정도에 불과하다. 카메라 워킹과 무빙 그리고 인터벌 같은 리듬도 중요하지만, 관건은 연기력이었다. 액팅과 리액팅, 연기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다행히 현지 출신인 상대 배우가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기를 이끌 만큼의 카운터 리액션을 해줬다. 관객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나온 듯하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동물권 보호에 목소리를 내왔다. 이번에도 노새와 촬영한 장면이 있는데 촬영 환경은 어땠나.

그 장면은 우리 베이스캠프와 매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한 촬영이었다. 이동 거리가 긴 것 자체로 동물 학대할 우려가 있어서 최대한 촬영지와 가까운 곳에서 노새를 섭외했다. 사실 사람과 동물의 촬영이 있으면, 동물은 우선 찍고 먼저 퇴근시키는 편이다. (웃음) 영화 <리틀 포레스트> (2017) 때 ‘오구’(기자 주: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기르는 개 이름)도 그랬다. 김태리 배우와 오구가 함께하는 장면에서 오구가 오케이면 오케인 거지. 동물은 거의 아역 배우와 비슷한 수준으로, 그러니까 대기와 촬영 시간을 되도록 짧게 하고 중간중간 급식과 급수 등을 동물의 특성에 맞춰 고려했다.



동물을 굳이 위험에 처하게 하며 촬영하는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CG나 앵글 처리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무리하게 직접 촬영하는 건 동물을 소품화하는 의식의 문제라고 본다. 이 기저에 깔린 생명 경시 풍토 역시 개선돼야 할 의식이다. ‘말 사망’ 사극 드라마 이후(기자 주: 드라마 ‘태종 이방원’) 이러한 사안에 경각심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동물 역시 아기나 고연령대의 배우에 준하는 그 특성에 맞는 배려나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도 참여해 산업 내 성평등 제고에 힘쓰고 있다. 어려움도 보람도 클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내가 현장에 남아 목소리 내는 마지막 세대가 된 것 같다. (웃음) 우리 다음 세대는 특성상 앞에 잘 나서지 않다 보니 필요에 의해 하고 있다. 든든 4년 차 정도인데 눈에 띄는 성과는 아니라도 현장에서 성차별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전처럼 말을 못 한다든지, 더러워서 그만둔다든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남녀 성별을 떠나 이런 단체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 자체로 출발이라는 생각이다. 이야기할 수 있고, 신고할 곳이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한 가지 더! <교섭>은 여성 감독이 최초로 연출한 제작비 100억 대가 넘는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 전공자나 독립영화씬을 보면 여성 감독이 많지만, 산업에 편입되는 비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중저예산 영화를 많이 다루게 된다. 큰 예산이 투입되는 영화는 맡기 힘든 현실인데 이러한 부분 역시 차별이고 유리천장이라 하겠다. 이러한 관행을 깨는 것 역시 든든의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이야기한 대로 여성 감독이 연출한 대작이라는 면에서도 특별한 작품인데, 개인적인 의미를 짚는다면. 또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말했듯이 <교섭>은 이전의 내 영화와는 다른 결을 지닌 영화다. 이런 면에서 하나의 실험이자 도전 같다. 큰 예산이 투입된 만큼 상업적이고 장르적인 문법을 차용했지만, 결국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나만이 옳은가 그리고 국가는 국민을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관객이 요르단의 이색적인 풍광과 함께 이런 문제의식을 한 번쯤 환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시리즈 두 편과 영화 한 편을 준비 중이다. 여성 서사 혹은 남성 서사 이렇게 특별히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주제와 소재에 따라 연출에 임할 예정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과거 치악산 아래 민박집에 머물며 진로를 고민한 끝에 영화를 선택했다는데 지금이라면 어떨까.

1984년 대학 4학년 때다. 당시 한국은 영화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당연히 여성 감독도 없었다. 지금으로 치면 마치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것과 비슷한 위상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고등학교 때도 한 번 자퇴해, 이런 전사가 있는 상황에서 또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어 억지로 다닌 결과 졸업을 앞두게 됐다. 학점이 좋은 편이라 (영문과) 대학원 진학, 취업 그리고 영화 셋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대기업에 취업한다면 한 5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둘 것 같았고, 공부를 계속해서 학교에 남는다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은 거다. 결국 한 10년 정도 투자해서 감독이 못 된다 해도 그 책임을 남에게 미루지 않겠는지에 초점을 맞췄고, 그렇게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치악산에서의 일주일 후 40년이 지났는데 다행히 이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사진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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