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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가 브랜드, 만화계의 산 역사! 허영만 화백 | 2020.09.22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만원의 고마움과 한국의 다채로운 식문화에 감사하게 한 ‘백반기행’

‘백반기행’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유튜브 ‘내일 출근 안 해!’로 이어가려

대본소, 만화잡지, 웹툰시대까지 시대의 큰 흐름에 부응해온 만화계의 산 역사

각시탈로 큰 성공, 대가가 적어 나태해진 적도

만화잡지 시대, 신인 작가의 패기에 관록으로 맞서고자 더욱 철저하게 자료 조사

웹툰시대,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다 현세대의 감성에 호소할 방식을 찾고 있는 중

최초 영상화 영화 <각시탈>, 마음 든 영상화 드라마 <퇴역전설>, 영상화 못해 아쉬운 <벽>

문하생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 준 것 미안해

후배에게.. 일단 쓰고 또 출발이 늦었다고 조바심내지 말고 기본기를 다지길




# 내일 출근 안 해!



최근 본격 주(酒)방 ‘내일 출근 안해!’로 유튜버 대열에 합류하셨는데요.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8시에 방영되는 ‘백반기행’(TV 조선) 촬영 차 전국의 밥집을 다니는데 술을 못 마셨거든요. 맛있는 음식에는 술이, 또 좋은 술이 있으면 안주가 떠오르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방송이라 제약이 많아요. 가령 컵 등에 특정 로고가 있으면 가리거나 아니면 카메라에 안 잡히는 방향으로 돌려 놔야 하죠. 그런 것에서 자유롭고자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말씀대로 콘텐츠와 표현에 있어 방송과는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먹방이 천지인데 가끔 보면 너무 오버액션 하는 게 보여요. 나는 표현이 서툰 데다 맛이 없는 경우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라 가급적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해요. 물론 ‘맛없다’ 라고는 못 하죠. 한 번은 정말 이상한, 묘한 맛이길래 이랬으면 더 좋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요즘 촬영하면서 느끼는 게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는 맛있는 술과 안주가 있는 집이 무궁무진하다는 거예요. 서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역지역 골목골목에 의외의 고수들이 숨어 있더군요.



그렇잖아도 맛난 술과 안주를 드시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한잔 생각이 나던데요. 주량은 어느 정도신가요? 상당한 애주가의 향기가 솔솔 납니다.(웃음)

촬영 날 아침에 나올 때 아내한테 야단 맞곤 해요.(웃음) 매일 술 마시는 것도 모자라 음주 콘셉트의 유튜브를 촬영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촬영 안 해도 어차피 마신다,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마시면 덜 마신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데요. 최근에 마신 9도 막걸리는 한 세 잔 마시니 알딸딸하던데요. 보통 소주는 한 병 반 정도가 정량인 듯합니다.



# 백반기행



여담인데, 스타일링이 참 멋지세요!

일부러 모양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잡지, 영상, 그리고 거리의 사람을 볼 때 좀 신경 써서 보는 편이에요. 사실 아내가 눈썰미가 좋고 옷을 잘 입는 편이라, 촬영하는 날은 미리 점검받곤 하죠. 예전에 아버님이 양복에 흰 모자 쓰고 다니시곤 했는데 어린 눈에는 미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센스가 참 좋으셨던 것 같아요. 나도 좀 물려받지 않았을까요?(하하하)



오, 타고난 감각과 내조 덕분이군요. (웃음) TV 채널 돌리다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 나오면 잠시 멈추고 꼭 보게 되는데요. 방송하신 지 꽤 됐는데,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만원’이라는 돈이 참 쓸모가 있는, 큰돈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우리가 찾는 백반이 만원 안팎의 가격이에요. 특별히 뭔가를 하긴 부족하게 느껴지는 돈인 만원으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곤 합니다. 또 우리나라가 좁다고 하지만 지역마다 특색 있는 먹거리가 있다는 것, 그 풍성한 식문화에 매번 놀라죠. 더불어 지역 음식의 원형을 계승하고 유지하는 분들께 고맙고요. 그 원형을 보존하고자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하루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로 세끼와 소주 한잔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라고 할까요. 차에 한권 비치해 놓고 시간 날 때 백반 기행을 떠날 수 있도록 말이죠. 물론 내가 검증했다고 다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입맛에 대체로 동조하는 사람에겐 유용할 거로 생각해요. 솔직하게 표현하니까요.



저도 백반기행을 떠나고 싶네요. 그간 기억에 남은 음식을 꼽는다면요.

연남동 인근의 뼈다귀 해장국집이에요. 촬영 중에 한 서른 살 정도 되는 친구가 포장하겠다고 냄비 들고 왔는데 그 친구 말이 이 식당 때문에 이사도 못 가고 있다는 거예요. 몸에 피 대신 해장국물이 흐른다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군요. 그 집이 테이크아웃 시 냄비를 들고 오면 원래 양보다 많게 꽉 채워주는데 그렇게 인심이 후한 점도 참 좋았어요.



# 만화



고백하자면, 선생님의 찐 팬입니다.(웃음) <각시탈>부터 <고독한 기타맨>, <무당거미>, <블랙홀>, <48+1>, <꼴>, <식객>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좋아하는 만화가 많습니다. 대본소, 만화잡지, 웹툰시대를 모두 경험한 만화가신데요. 외람된 질문이지만, 업계의 흐름이 바뀌는 변곡점마다 생존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74년도에 데뷔한 후 초창기때의 목표는 어떻게 하든 빠른 시일 내 일류대접을 받는 거였어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일 때라 정말 열심히 했죠. 데뷔 이듬해 <각시탈>을 냈는데 책은 잘 팔리지만, 원고료는 최고가 아니더군요. 조금 받았어요. 일한 것에 비해 대가가 적으니 나태해지더군요. 그러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했어요. 예전에는 발표 3~4년이 흐른 후 재판을 찍곤 했는데, 스스로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찍거든요. 나중에 보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작업한 시기의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퀄리티가 좋아진 거죠. 덕분에 독자층도 넓어졌어요.



이후 아이큐점프 등 만화잡지 시대가 왔는데 아이디어가 넘치고, 기세 좋은 신인 작가들이 갑자기 대거 등장했어요. 그때 40대 중·후반이었는데 그 친구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하다 하루에 버스가 세 번밖에 다니지 않는 외진 마석으로 작업실을 구해 들어갔어요. 연재를 대폭 줄이고 문하생 셋과 함께 그곳에서 1년을 보냈죠. 당시엔 한 잡지에 보통 25명 정도의 작가가 투입되는데 그중 5등 안에 들면 출판사 측이 이런저런 간섭을 안 해요. 즉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는 거죠. 5등 안에 머무는 것을 목표로 해 패기의 신입에 비해 스테미너는 딸리지만, 경륜으로 맞서 보자고 했어요. 권투로 치자면 아웃복싱인 거죠. 그때부터 자료조사와 취재 등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재밌게 보던 만화잡지 이면에 작가들의 그런 치열한 경쟁이 있었군요. 웹툰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어떠셨나요?

웹툰 초기에는 지금껏 종이에 그리는 작업만 하다 모니터에 그리려니 영 감이 안 오더라고요.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적응했는데, 하고 나니 훨씬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하더군요. 그림 그리는 것도 편리하고, 컬러링 등 수정도 쉽고, 문하생에게 작업을 할당하는 것도 능률적으로 가능해요. 그렇게 기술적으로는 문제없어졌는데 다만 웹툰의 주요 소재가 로맨스와 쌈박질(?)이 많다 보니 나와는 안 맞더군요. 뭔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내가 트렌드를 못 맞추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한편으론 내 나이에 유행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결국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다 내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고, 지금 찾는 중입니다. <타짜>, <식객> 등이 당시 시대에 호응을 받았듯 웹툰 세대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이 되겠죠.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은요.

3월에 주식만화 <6천만원> 연재를 끝내며 앞으로 마감 있는 만화는 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마감 맞추는 게 참 힘든 일이니 말이죠.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마감이 없다는 것은 독자를 안 만난다는 건데 그건 또 아니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연재보단 올리고 싶은 것을 (원하는 때) 올리는 형태로 독자를 만나려고 합니다. 지금 준비해 놓은 게 꽤 있습니다.



만화 인생에 있어 의미가 남다른 작품을 꼽는다면요.

<각시탈>(1974)은 데뷔 직후 크게 성공했지만 그만큼 대접은 받지 못했던 작품이고 <타짜>(1999)는 입지를 굳힌 작품, <식객>(2003)은 더 굳힌 작품입니다.



영화화된 <타짜>, <식객>, <미스터 고>, 드라마로 큰 인기 얻은 <각시탈>, <아스팔트 사나이>, <미스터 Q>, 신드롬을 일으켰던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등 OSMU(원소스 멀티유스)의 원조라 할 수 있는데요. 영상화된 첫 작품과 당시 기분은 어떠셨나요.

<각시탈>인데 정식으로 상영관에 못 걸리고, 저~기 미아리 어딘가에서 상영됐다더군요. 사실 나도 못 봤습니다. (웃음)



영상화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잘 구현된 작품을 꼽으신다면 무엇인가요.

원작을 가져가면 만드는 과정에서 ‘만화적’이라며 각색을 많이 하곤 합니다. 실사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만화적이라고 표현할 순 있지만, 사실 만화적이라고 못을 박는 게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됐어요. 원작을 잘 살린 것 중 하나가 바로 세상을 떠난 김종학 PD가 연출한 <퇴역전선>(1987) 입니다. 보통 영화에 판권을 넘길 때 아무래도 신생 회사라고 하면 좀 거리를 두는 편이에요. 그쪽 계통에서 평가가 어떤지 알아보고 넘기죠. 왜냐면 일단 넘기면 자녀를 결혼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들의 집에 밥하는 연기가 나는지 멀리서 살펴볼 수는 있어도 일일이 반찬 간섭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거죠. 사업적으로 성공시키고 영화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 믿고, 잘 만들어졌으면 하고 지켜보는 겁니다. 근데 솔직히 시사회에 갔다 (어두워 티가 안 나니) 중간에 나온 적도 있어요. (웃음)



선생님 작품 중 '이건 꼭 영상화해야 해!' 하는 것이 있다면요. 즉 영상화가 안 돼 아쉬운 작품은요.

<벽>(기자 주: 재벌가 대학생 ‘신석기’를 주인공으로 한 기업 극화)이에요. 미국 석유재벌 ‘게티’ 가문이 겪은 납치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당시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다가 잡지에 8페이지에 거쳐 실린 폴 게티 이야기를 접했었죠. 손자가 납치됐지만, 폴 게티는 자작극이라는 생각에 범인과 협상에 응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후 손자의 귀가 배달되죠. 우여곡절 끝에 납치됐던 손자가 집으로 돌아오지만, 납치 후유증을 크게 겪고, 그 집안도 내외적으로 우환에 휩싸입니다. 너무 흥미로워 여기저기 찢겨진 잡지의 일부분을 나 역시 찢어와 참고했어요. 최근 영화로도 나왔더군요. (기자 주: 리틀리 스콧 감독 <올 더 머니>(2017)) 영화로 이미 나와 좀 그렇지만, 영상화 하면 흥미로울 작품입니다.



<타짜>(2006), <식객>(2007), <미스터 고>(2013)와 최근작 <타짜: 원 아이드 잭>(2019)까지 선생님의 작품이 영화로 많이 옮겨졌는데요, 평소 영화를 즐기시나요. 또 선생님께 영화는 어떤 느낌인가요.

요즘은 히어로물이 주류인데 만화도 그렇지만 영화도 히어로물은 너무 작위적이라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에요. 스토리가 짐작하는 대로 거의 맞아떨어지니 크게 재미를 못 느낍니다. 그래서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손주 녀석과 티격태격하곤 하죠. 마블코믹스를 중심으로 한 히어로물 덕분에 CG기술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했지만,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도 과연 그런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기술적으로 치우친 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어로물 외에도 좋은, 아름다운 영화들이 정말 많으니까요. 유럽 영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등을 주로 봐요.



내게 만화는 토키(기자 주: talkie, 영상과 동시에 음성·음악 등이 나오는 영화의 총칭) 없는 영화예요. 소설, 희곡 등이 영화화되면서 다양한 연출이 시도돼 왔고,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겠다 싶은 순간 어느새 참신한 기법이 나와 있어요. 내 시야가 좁았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이죠.



보통은 리즈시절을 묻지만, 전 색다르게 ‘흑역사’를 여쭤보겠습니다!(웃음)

응? 아 흑역사? 음… 예전에 문하생들에게 가끔 화를 낸 것이에요. 그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원고를 앞에 놓고 화낸 것이지 개인적인 감정이 결부됐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받는 입장에선 상처가 될 수 있었겠죠. 또 정말 어려웠던 시절, 일본 만화를 몇 번 베낀 적이 있어요. 살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거죠.



과오를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예전엔 만화가, 오늘날은 웹툰 작가를 지망하는 예비 작가들이 많은데요. 업계의 대선배로서 조언을 주신다면 지망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래됐으니 얘기할 수 있는 거죠. 현재 진행형이었다면 솔직히 말하지 못했겠죠. 예전 밑에 있던 문하생이 독립한다고 나가도 자기 이름을 걸고 연재하는 사람은 열에 한두 명 꼴이었어요. 그만큼 경쟁이 심한 세계입니다. 나 역시 문하생시절을 거치면서 선생님이 스토리 몇 줄 써 주시면 그것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보강하고 콘티 짜면서 연습하는 시간을 거쳐 내 이름으로 된 만화를 낼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렇게 연습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요. 고민하기보다 일단 쓰면서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는 게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절대로 동료가 치고 나가는 속도에 불안해하지 말라는 겁니다. 늦게 출발하는 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에요. 가령 집을 짓는다고 치면 누군가 지어 놓은 집에 칸막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스스로 전체를 디자인해 뼈대를 세울 수 있어야 하죠. 그러니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기본기를 다지세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이 느끼시는 소소하나 행복한 일은 무엇인가요.

좋은 친구들과 만나 맛있는 안주와 함께 술 한잔하는 거죠.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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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광희(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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