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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회원 되다, 박인영 음악감독 | 2020.08.18
 
[무비스트=박꽃 기자]





2020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819명의 신입 회원 목록을 공개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화 <기생충> 구성원 다수가 이름을 올렸는데, 그와 함께 명예로운 이름을 각인한 또 다른 한국인 영화 음악 감독이 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피에타>(2012)와 칸영화제 초청작 <표적>(2014)의 음악을 쓴 박인영 음악감독이다. <관능의 법칙>(2014) <특별시민>(2017) <창궐>(2018) 등 다양한 한국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그는 2008년 뉴욕대학교(NYU) 대학원에서 영화 음악을 전공한 뒤 지금껏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 중이다. 영화 일에 관한 한 ‘좀 한다’는 사람이 모두 모여있는 LA에서 여전히 할리우드와의 협업을 꿈꾸며 ‘버티고 있는’ 그에게, 예상치 못하게 주어진 아카데미 회원 자격이 안기는 즐거운 의미를 들어본다.



올해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아카데미) 신입회원으로 초대받았다. 축하한다. 소식을 미리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홈페이지에 신입회원 목록을 공개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이메일이 들어와 있었는데, ‘아카데미’라고 쓰여 있어서 학원 같은 곳에서 온 홍보 메일인 줄 알고 열어보지도 않았더라.(웃음) 나중에 그 메일이 생각나서 다시 찾아 눌러봤는데 봉준호 감독님의 사진이 떴다. 아는 후배에게 내용을 공유했더니 진짜인 것 같다고! 그게 7월 중순쯤이다. 그러고 나서 좋은 소식으로 놀라게 해 주려고 뉴욕에서 같이 공부한 또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미 7월 초 신문에서 보고 다 알고 있더라.(웃음)



페이스북 계정으로 소식을 공유하면서 ‘기생충 효과’도 언급했다.

기생충 효과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동양중에서도 한국의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창작자를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화이트 파티’(White party)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평가하더라. 그렇다고 그들이 회원 자격을 호락호락하게 주는 곳은 아니다. 왜 나를 선정했을까, 그 배경을 생각해봤다. <피에타>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표적>이 칸영화제에 갔다. 작업한 작품 여럿이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2008년 뉴욕대 대학원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한 뒤 계속해서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했고 지금껏 그런 내용을 SNS에 올려왔다.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웃음) 내가 나를 홍보해왔다. 아마 그런 내용을 보고 내가 꾸준히 일하고 있다는 걸 안 게 아닐까.





당신 이름을 봤을 때 기분이 어떻던가.

반가운 이름을 본 기억이 먼저 난다. <기생충> 영화 음악을 맡은 (정)재일이. 한국 이름이라 금방 눈에 들어오더라. 친분 없는 사람이라도 한국인이라면 반가웠겠지만, 그와는 윤상의 첫 공연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 이름도 찾았다. 내 이름이 바로 그 위에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지금 막스 리히터랑 박인영이 나란히 있는 거야? 믿어지지 않더라. 유희열은 “홍난파 이후에 박인영”이라고 기분 좋은 농담을 한다.(웃음) 이런 식으로 한국 회원이 늘어나면 앞으로 한국 영화에 좀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어떤 일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왕관’부터 쓴 느낌이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회원 자격에 대해서도 알아봤을 것 같은데.

궁금하더라. 회원 자격은 영속적인 건지, 어디까지 투표할 수 있는 건지. 특별히 나쁜 이유로 자격이 박탈되지 않는 한 한번 회원은 영원한 회원이라고 한다. 말년에 작품 활동이 뜸해져도 말이다. 투표는 당연히 영화 음악 관련 부문에서 가능하고, 작품상도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 부문에 속해 있든 (회원 자격을 얻으면) 작품상 투표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영화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과 작품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스럽고 기쁘다.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현(絃) 편곡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2008년 영화 음악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가요계의 중심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영상과는 큰 관련 없이 일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다들 영화를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울고 있을 때 음악이 있다는 이유로, 혹은 음악이 아예 없다는 이유로 관객의 감정이 좀 더 자극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보는 이의 정서를 건드린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가요계에서 스트링(현) 편곡가로 꽤 잘 나갈 때였는데, 왠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답답한 느낌도 있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게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설렜다. 그런데 요즘은 국내에서도 가요를 소비하는 방식이 많이 변화한 것 같다. 예전에는 음악만 들었다면 요즘에는 비주얼을 같이 보지 않나. 그만큼 음악과 영상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앞으로 두 가지를 결합한 콘텐츠가 더 많이 나오리라고 본다.





대중음악계에서만 일하다가 영화음악으로 활동 분야를 넓혔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이 있다면.

뉴욕대에 처음 갔을 때 욕심이 너무 많아서 자꾸만 음악이 영상을 이겼다. 음악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상을 잘 받쳐줘야 하는데 오히려 “나도 같이 얘기할래” 하고 나서는 식이었다.(웃음) 그러면 양쪽이 부딪힌다. 아마 음악의 존재감이 너무 없으면 내가 음악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봐 자꾸만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라면 영화 음악이 아니라 자기 음악을 해야 하는 거더라. 영화 음악은 마치 벽지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영상의 이야기와 배우의 감정선을 철저하게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거다. 뉴욕대에서도 늘 감독과 싸우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설령 감독이 (기술적으로) 음악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영화에 어떤 음악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니 너희 의견을 관철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거로 알고 있다. 일정은 어떤 식으로 분배하고 운용하나.

영화 음악의 파이널 믹스가 기준이다. 그때 한국으로 온다. (그에 앞서 진행돼야 하는) 작곡은 어차피 혼자 해야 하는 작업이다. 영상으로 전화로 감독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미리 받아둔 영화 영상에 내가 쓴 음악을 심어서 보낸다. 같은 방식으로 감독의 의중이 담긴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 작업을 거친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일은 가능하다. 그동안은 내가 한국에 없기 때문에 같이 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실제로 좋은 프로젝트가 있음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고.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는 비대면으로도 많은 일이 가능하다는 걸 보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것 같다.



미국에서의 활동은 어떤가. 10년 넘게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건 할리우드와의 작업도 기대한다는 의미일 텐데.

2008년 유학을 떠날 때 나는 불혹의 나이였다. 졸업 뒤 미국에서 일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운 좋게 한국 영화 음악을 몇 편 맡았고 미국에서는 팝 음악 스트링(현) 편곡을 했다. 그렇게 7년 반 정도를 뉴욕에서 보냈고 영화와 엔터테인먼트의 메카인 LA로 이사했다. 아마 이쯤 되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수영장 딸린 집에서 지내는 줄 알 텐데, 그렇지는 않다. 룸메이트와 함께 산다. 임대료라도 아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웃음) LA는 영화일 에 관한 한 ‘좀 한다’는 사람이 전부 모여 있는 곳이고, 그런 면에서 할리우드는 ‘또 다른 세계’ 다. 일을 맡는 건 쉽지 않다. 다만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예컨대 <캡틴 마블>(2019) 음악을 담당한 피나 토프락(Pinar Toprak)을 보면 가능성은 열려있다. (기자 주: 이스탄불 출신 여성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외국인에게 녹록한 곳은 아니어도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의 기회는 열려 있는 곳 같다.



 The Village Studios
The Village Studios


한국 영화 음악도 꾸준히 맡고 있는데.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나고 싶은데, 아직 영화계에서 나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답답하다. 내가 엄청 욕심쟁이다.(웃음) 욕심이 많은 만큼 내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내가 그런 사람인 걸 알기 때문에 가요계에서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도 일을 맡긴다. 어디에 있든 제때 작업하고 녹음해서 한국으로 보내주리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 땀과 노력은, 어딘가에는 쌓이고 있지 않을까. 한국 영화 음악도 미국 영화 음악도 두루 할 수 있는 날이 분명 올 거다.



특히 <창궐>은 작업 규모가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창궐>은 제작비가 큰 영화라서 그런지 음악 예산도 컸다. 언제 또 이정도 규모 작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싶어서 런던심포니와 녹음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에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런던 심포니를 ‘지휘’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이 됐다.(웃음) 영국에서 녹음을 끝내고, 미국 LA로 돌아와 나머지 작업을 마치고, 한국에서 국악 작업까지 거쳤다. 이 모든 일정을 9일 안에 끝냈으니 정말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때 남겨둔 영상 기록을 보면 (<창궐>이 아니라) 내가 좀비였다.(웃음) 김성훈 감독님이 영국으로 오셔서 녹음 진행 과정을 지켜보셨는데 날 굉장히 믿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는 OTT 플랫폼 웨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 SF8 중 한 편인 <우주인 조안> 음악도 작업했다. 하지만 대중음악에 비하면 영화음악은 워낙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



 London Symphony Orchestra
London Symphony Orchestra


평소 감독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가. 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감독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감독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제안받았다. 감독이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면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음악 용어를 사용해 의견을 전달하기는 어렵다. 그럴 때면 자신의 느낌을 최대한 형용사로 표현해달라고 한다. 슬프다면 어느 정도로 슬프고 어떻게 슬픈지 최대한 설명해주면 좋다. 레퍼런스 음악을 들려준다고 해도 곡 전체가 아니라 어느 부분의 어떤 요소가 좋은지 표현해주면 좋다. ‘뿅뿅뿅’거리는 소리라든지(웃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예컨대 가수 김윤아 씨는 언젠가 “큰 파도가 몰려오는데 그 안에서 작은 파도가 같이 몰려오는 느낌”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런 방식도 좋다.



2018년 애국가를 편곡하는 등 독특한 이력도 눈에 띈다. 지난달에는 SM엔터테인먼트, 서울시향과 함께 레드벨벳 ‘빨간맛’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 공개했다. 유튜브 조회 수가 순식간에 100만 회를 넘었더라.

SM엔터테인먼트에서 제안을 해왔다. 서울시향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는데, 무조건 한다고 했지.(웃음)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엔터테인먼트와 교향악단이 만난 것 아닌가. 팝과 클래식의 만남이라는 주제도 좋았다. 이럴 경우 영화 음악 작업보다는 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것 같다. 소소한 피드백을 제외하면 전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방향대로 작업했는데, 유튜브에 달린 댓글을 보니 긍정적인 게 많더라.(웃음) 이런 식의 장르 융합 콘텐츠는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거라고 본다. 영화 음악도 오케스트라, 일렉트로닉 등을 섞은 하이브리드가 이미 등장하지 않았나.



 EastWest Studios
EastWest Studios


앞으로의 영화 음악 계획은.

호러물인 <요가학원, 칼리>(가제)와 로맨틱 코미디 <애비규환> 음악의 마무리 작업 중이다. 올해 한 작품을 더 하게 되는데 이케마츠 소스케, 최희서, 오다기리 죠가 주연하고 이시이 유야 감독이 연출하는 <아시안 엔젤>이다. 이외에는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인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의 협업이 예정돼 있다. 아이들이 연주하는 모습에 감동 받아 선뜻 작곡 의뢰를 수락했다. 오는 9월에 녹음을 마치면 나는 다시 미국으로 떠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일도 많이 하는 편이다. 바쁘고 긴 하루가 끝나면 창가에 서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밤 풍경을 바라본다. 심신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달빛이 좋으면 깊은 숨을 한번 쉬어 본다. 종현 <하루의 끝> 편곡 영감도 그러다가 얻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던 음표를 가라앉혀야, 꿈속에서 작곡을 하지 않고(웃음) 깊은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에 있을 때는 너무 답답하다 싶을 때마다 산타모니카의 해변을 찾아가서 걷는데, 여유 있게 놀지는 못해도 그런 짧은 휴식이 정말 좋다. ‘빨간맛’이 아니라 꿀맛이다.(웃음)





사진_이종훈(스튜디오 레일라)

현장 사진 제공_박인영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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