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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맛보는 앙상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최민식 | 2020.01.20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네가 조선의 하늘을 열어 보거라”라고 명하는 세종이나 “오직 전하 곁에 있는 것뿐”이라고 소원을 말하는 영실. 임금과 신하가 나란히 누어 하늘을 바라보고, 검게 칠한 창호지를 밤하늘 삼아 별구경을 하기도 한다. 허진호 감독의 신작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이렇듯 기존의 사극에서 보지 못했던 설정과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세종의 애민사상과 영실의 과학적 업적은 기본으로 깔고 가되 두 사람이 나눴던 우정과 열정과 애정, 관계에 주목했고 초점을 맞췄다는 영화의 의도대로 <천문>은 신분을 초월해 같은 꿈을 꾸던 두 인물의 깊은 관계 안으로 관객을 불러들인다. 다른 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세종과 영실의 완벽한 합을 보여준 한석규와 최민식 두 배우의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호흡 덕분이다. 새내기 시절부터 막연한 선후배 사이였던 두 사람은 영화 <쉬리> 이후 무려 20여년 만에 다시 만났다. 운동 경기에서 펼치는 랠리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었다는 최민식, 오래간만에 맛보는 앙상블이었다고 현장을 기억한다.



천재 과학자로서 ‘장영실’(최민식)의 면모와 업적보다 세종(한석규)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여타 사극과 차별점이다. 세종의 애민사상과 장영실의 과학적 업적은 기본으로 깔고 갔다. 사실 장영실의 생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 태종 때 발탁돼 세종의 눈에 띄어 면천됐고 안여사고(장영실이 만들었던 세종의 가마가 부서지는 사고) 이후 책임을 물어 곤장 80대를 맞았다는 기록이 마지막이다.



장영실의 명확하지 않은 최후와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상상력을 풍성하게 덧대 색다른 방향에서 접근을 시도한 인상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영실이 왕의 지근 거리에서 생활했다는 건 그만큼 세종이 그를 아꼈다는 방증일 거다. 세종이 구현하고자 했던 천문 사업에 대해 격의 없이 수시로 의논하고 협업했을 거다. 가장 높은 신분인 왕과 미천한 노비가 만나 놀랄만한 업적을 일궈냈다는 것이 굉장히 영화적 설정으로 다가왔다. 나뿐만 아니라 허진호 감독이나 (한) 석규도 그 부분에 주목했다. 둘의 끈끈한 우정과 같은 꿈을 꾸고 이루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정치적 갈등이나 명나라의 외교적 압박 등이 조미료처럼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기존 사극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세종과 영실이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신도 그중 하나다.

원래는 둘이 산책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거였다. 그런데 석규가 누워서 별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하이파이브했지.(웃음) 그게 바로 우리가 표현하고자 했던 세종이었다. 극 중 ‘신분이 무엇이 중요하냐, 네가 조선의 하늘을 만들어라’는 세종의 대사에서 느낄 수 있듯 말이다. 그 순간 영실은 몸과 마음을 다해 세종의 품에 들어갔을 거다. 자신을 인정하고 허물없이 대해주는 군주를 향한 충정은 단순히 감동 이상일 터다.



장영실은 세종보다 일곱 살 정도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번엔 상당히 귀여운(?) 면모를 보인다. (웃음) 투정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영실은 자신을 인정해준 임금을 위해 자기 능력의 200%라도 발휘하고 싶었을 거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 어떤 속물적인 요구보다 전하 곁에 있는 것이라고 답하지 않나. 또 세종이 한글 창제에 꽂혀 있자 살짝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투정부리는 것같이 보였다면 내가 잘 표현한 거다. (웃음) 사실 두 사람의 관계가 좀 더 디테일하고 구체적으로 좀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브로맨스를 넘어 멜로 드라마 같은 인상도 있다. 세종과 영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보며 연기할 맛이 나겠구나 싶던데 어떤가.

음, 2인 1조로 경기하는 탁구 혹은 테니스 같은 종목에서 랠리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주 오래간만에 맛보는 앙상블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시퀀스를 꼽는다면.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천문의기를 다 부숴버리자 영실이 세종을 만나러 가서 내지르는 장면이다.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영실이 ‘전하의 뜻을 두 손에 담은 것이 정말 죄냐’고 세종에게 묻는다. 그때 세종이 아주 담담하게 ‘죄다’라고 답하자 영실이 매우 황망해한다. 탁구로 치면 스핀을 넣은 거라고 할까. 사실 세종의 반응을 두 가지 버전으로 촬영했었다. 같이 버럭 하는 것과 담담하게 답하는 것으로 말이다. 아마 두 인물 모두 내질렀다면 좀 과하게 느껴졌을 거다. 석규야 모든 연기가 다 되니 다양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 좋았다.



위 두 장면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창호지를 밤하늘 삼아 별보는 시퀀스가 가장 독창적으로 다가왔다.

세종과 영실이 함께 작업에 몰두했지만, 항상 일 얘기만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흔히 50분 작업 10분 휴식 시간에 담배 한 대 피며 이야기 나누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가령 내기를 하는데 영실이 좀 져주기도 해야 하는데 혼자 너무 잘한다든지..(웃음) 그 장면의 콘셉트는 몽상가들이다. 두 인물 모두 순진하고 천진한 면이 있었기에 밤하늘을 바라보며 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여는 꿈을 꾸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창호지를 먹물로 칠한 후 구멍을 뚫고 그 틈새로 등불을 비춰 안에서 보면 마치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듯한 풍경이 된다. 보면서 CG일지 아닐지 궁금하더라.

실제로 내가 칠했으나 전체를 다 하진 못했다. 내가 시작하고 미술팀이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마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려 칠해 놓고 다른 신 촬영한 후 돌아와 창호지에 구멍 뚫고 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캐스팅 관련 비하인드를 듣자 하니 흥미롭더라. 허진호 감독이 두 배우가 알아서(?) 배역을 정하라고 했다고.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허 감독이 둘이 상의해 결정하라고 했다. 석규에게 정하라고 했더니 3일 후 다시 이야기하자더니 세종을 하겠다더라. 세종도 영실도 모두 매력 있고 특히 영실은 보여줄 게 많아 좋았다. 누가 어떤 역할을 하든 관계에 초점을 맞췄기에 서로의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허진호 감독의 의중대로 된 것 같다. (웃음) 허 감독님과는 첫 호흡인데 어땠나.

논리적이면서 감성적이고 고도의 연출력을 지닌 분이다. 쉽게 말하면 여우 같기도?(웃음) 두 배우를 데려다 놓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써먹을지 아주 잘 알아, 두고 지켜 보고 필요하면 가끔 첨삭하거나 덜어내는 등 양념하고 가다듬는 데 능숙하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조용하면서 차분히 알려줘 참 좋았다.



평소 한석규 배우와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다.

내가 82학번, 그가 83학번으로 한 학년 차이라 워낙 친했다. 심심하면 우리 집에 와서 라면 끓여 먹고 같이 영화나 연극 보러 자주 다녔다. 당시 장발이 유행이라 석규가 테리우스같이 긴 생머리를 했었는데 어찌나 청순해 보이던지! 게다가 목소리는 좀 좋나. 석규가 노래하면 요즘 말로 죽음이었다. (웃음)



드라마 <서울의 달>(1994), 영화 <쉬리> (1998) 이후 무려 20년 넘는 세월이 흐른 후 성사된 만남이다. 그간 만났을 법한데 의외다.

그게 다 인연이 닿아야 하더라. <올드보이>(2003) 때 내가 ‘우진’역에 석규를 추천했고 박찬욱 감독도 당시 OK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성사가 안 됐다. (유) 지태의 ‘우진’도 훌륭했지만 석규의 ‘우진’도 정말 좋았을 거다. 정말 같이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한석규 배우와 당신, 연기 톤을 비교한다면.

음, 내가 일렉트릭 기타면, 그는 베이스 같다고 할까. 실제 성격도 아주 다르다. 나는 급하고 그는 느긋하다. 봐서 알겠지만 평소에도 얼마나 점잖고 영감님 같나. 그래서 잘 맞는다. 배우의 성격, 발성과 톤, 가치관, 경험이 종합돼 하나의 악기화 되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배우마다 독특한 맛을 내는 것 아니겠나. 석규의 장점은 단순히 테크닉에서 오는 것이 아닌 섬세한 표현력이다. 이번에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가운데 ‘*새끼’야 욕을 한다든지, 추상같이 버럭해 주위를 오금 저리게 한다. 내가 구미호가 아니냐고 물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20살 때 본 느낌이 지금도 같다는 거다. 나는 맛(탱)이 갔는데 그는 늙지도 않는다, 허허. 그리고 한결같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연기관을 올곧이 지키며 성실하다. 후배지만 배울 게 많다. 이번 작업하면서 내 정신이 오백년 정도 나갔었구나 하며 반성했다. (웃음) 그의 특징이 또 하나 있다.



뭔가.

만나는 사람마다 ‘선생님은 어떻게 연기하게 되셨냐’고 물어본다. 이번에도 신구 선생님을 비롯해 김원해, 윤제문, 전여빈 등등 함께 작업한 사람들을 붙잡고 질문하더라. 신구 선생님이 자꾸 물으니 귀찮아하면서도 하나하나 자세히 이야기해주는데 옆에서 듣던 우리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 질문을 뜬금없이 받으면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반추해볼까. (웃음) 어쩌다 연기에 입문했나.

사춘기 때 공부하기 싫어 자주 땡땡이치거나 아프다고 조퇴하곤 했었다. 그러고나서 의정부 중앙극장에 가서 온종일 앉아 있는 거지. 개봉관이었지만, 표를 엄격히 검사하지 않아 가능했다. 당시 영화 관람료가 600원으로 서울의 반값이었다. 겉늙은 모습 덕분인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도 꽤 봤었다. (웃음) 형이 입던 잠바 걸치고 담배 한 대 물고 가면 바로 통과였다. 어느 날 바브라 스타라이샌드의 <스타 탄생>(1976)을 봤다. 무심코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감동적이더라. 긴 데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리고 봤다. 그때부터 개봉작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지. 처음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 감독님이 쓴 수필집을 찾아 읽기도 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영화감독이 되는 법에 관해 묻고 다녔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고 변인식 선생님(영화평론가)을 만났다.



운명적?

당시 명동 근처 영화 관련 행사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선생님이 어느 학교 다니냐고 물으시며 명동 필립이라는 경양식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혹시나 싶어 기다리니 진짜 내려오셔서 맥주도 따라 주시면서 영화감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2시간 넘게 얘기해 주셨는데 아주 감동이었다. <파이란>(2001)으로 남우주연상 탄 후 선생님께 당시 고등학생이 나라고 기억하시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 깜짝 놀라시더라.



근데 감독이 아닌 배우가 됐다.

일단 대학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려고 하니 실기 준비를 해야 했는데 어디서 배워야 할지 전혀 정보가 없었다. 극단에서 워크숍 겸 단원 모집하는 3개월 코스가 있기에 아버지께 사실대로 말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13만 7천원(당시 매우 고액이었다)을 타서 극단 뿌리에 들어갔다. 생전 처음 대본을 받고 무대에 올랐는데 흥미롭더라. 그렇게 동국대에 입학했는데 당시엔 선배님들 계보가 아주 엄격해 영화 할 생각이면 다른 학교로 가라는 거다. 극작 전공이든 뭐든 무대를 경험해 봐야 한다고 해서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연극이 너무 재미있었던 거지. 그 덕분인지 지금도 소품 만들어 오거나 세트 등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진솔한 과거담을 들으니 정말 즐겁다. 마지막 질문이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본(볼) 관객께 인사 한마디 부탁한다.

역사극이지만 엄격하게 고증을 따지는, 빡빡한 마음보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듣는 심정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세종과 영실의 이야기를 어떻게 말랑말랑하게 풀어냈을지, 두 배우가 오랜만에 만나 어떤 호흡을 선보일지 말이다. 그 옛날 드라마 <서울의 달>의 투덕거리던 두 친구가 어떻게 늙었는지 하는 마음으로 보시면 기대 이상으로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길!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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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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